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원제 Eggshell Skull
저자 브리 리
역자 송예슬
출판사 카라칼
출간일 2020년 4월 20일
페이지 504쪽
판형 145*220*28mm
무게 605g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1부
2부
에필로그
감사의 말
본문 중에서
출판사 서평
“세상을 바꿔온 건 결국 피해자들의 목소리였다.”
법원의 재판연구원으로서, 그리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성범죄를 둘러싼 사법 제도의 모순과 정의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앞으로 나아간 한 여성의 용감한 회고록
“브리 리가 지목한 호주 사법 시스템의 문제들은 한국과 지독하게 닮아 있다.”
- 최지은 | 작가,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저자의 용기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싸우도록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 조윤희 |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전담 변호사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
1889년, 미국 위스콘신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년이 같은 반의 다른 학생을 장난삼아 발로 살짝 찼는데 하필 맞은 정강이 부위가 이전에 다친 곳이었고, 그로 인한 세균 감염으로 피해 학생은 한쪽 다리를 거의 쓸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 학생이 다리를 못 쓰게 된 책임이 가해 학생에게 있다고 판결하였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이란 이처럼 불법적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하여 원인 제공자가 모든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영미법상의 유명한 법률 원칙이다. 계란껍질만큼 얇은 두개골을 가진 사람의 머리를 한 대 쳤을 뿐인데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퀸즐랜드 지방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한 브리 리는, 이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을 성범죄 사건이 지니는 특수성과 연관지어 사법 시스템의 부당한 현실을 고찰하고 나아가 그 한계를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성폭력 생존자가 겪는 피해의 연속성과 심각성에 주목한다. 단 한 번이라도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가해 행위의 경중과 관계없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있으며, 그렇기에 피해자가 얼마나 연약한지와는 상관없이 가해자는 상대의 모든 피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대개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끔찍한 짓을 저지른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보다 자신의 욕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지른다. 범행 동기에 대단한 이유랄 것은 없다. 그 사람 역시 단지 그러고 싶었기 때문에, 내 의사와 감정은 철저히 무시해도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내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는 성적 호기심과 만족감을 충족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는 내가 받을 충격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린아이를 성추행하는 것은 그 아이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격과 신체를 짓밟는 짓이다. 아직 굳지 않아 보드랍고 여린 마음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리는 짓이다.” (429쪽)
생생한 판례들로 가득한 법정 이야기
흔히 ‘로클럭(law clerk)’이라고도 불리는 재판연구원은 그 누구보다 재판 과정을 자세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 브리 리는 로스쿨을 졸업한 뒤 재판연구원이 되어 성범죄 공판을 주로 맡는 판사님을 도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자신이 성범죄 사건을 더 이상 중립적, 객관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 자신부터가 여성이자 성폭력 피해 생존자였기 때문이다. 의붓딸 성폭행, 아동 성 착취물 소지, 데이트 폭력, 지인 강간 등 하나같이 끔찍한 사건들과 그 당사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는 피해자의 입장에 더욱 깊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의 1부는 이같이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성범죄 사건의 재판들을 다룬다. 저자는 가해자에게 너그럽고 피해자에게 엄격한 사회적 시선과 배심원단의 평결에 분노하고, 사법적 정의가 가닿지 못하는 어둡고 일그러진 현실에 좌절한다. 그중 상징적인 사례가 필립스 사건이다. 술자리에서 잠든 여성을 강간해놓고도 피고인 필립스는 유죄 평결을 받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선, 대부분의 성범죄가 그렇듯 확실한 물적·인적 증거가 남지 않았다. 폭력도 발생하지 않았고, 목격자도 없었다. 또한 피해 여성은 사건 당시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며, 법정에서 보인 성격과 말투는 예민하고 거칠었다. 이른바 ‘모범적인 피해자’의 전형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법정에서 보았던 여성들과 아이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들은 울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지만, 언제나 재판연구원 자리에 가만히 앉아 침묵해야 했고 중립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 존재인지 꼭 말해주고 싶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괴물이 세상에 정말 존재한다고, 그 괴물은 그냥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게도 그 괴물을 법정에 세울 권리가 있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번호를 눌렀다.” (262쪽)
물러서지 않는 싸움의 시작
지방법원의 성범죄 재판을 다루면서 브리 리의 불안 증세는 점점 커져가고, 그 증상은 폭식, 폭토, 자해와 같은 극단적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던 중 그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의 낮은 자존감과 극심한 우울감이 성폭력 피해자의 전형적 증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해자가 심어놓은 어두운 존재가 자신을 안에서부터 좀먹어왔음에 절망하지만, 그는 살기 위해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하여 브리 리는 깊은 기억 속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던 10여 년 전 그날의 사건을 끄집어내 자신을 성추행했던 지인을 법정에 세운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의 2부는 저자가 경험한 바로 이 법적 싸움을 그린다.
형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브리 리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경찰의 행동과 공판 절차에 낙담하기도 하고, 가해자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로 공포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꿋꿋이 지난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무엇보다 2년이 넘는 재판 과정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해준 건, 또 다른 피해 여성들과의 연대감이었다. 브리 리는 자신이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앞으로 다른 여성들이 승리할 가능성 또한 높아질 거라 믿었고, 자신의 투쟁 역시 이전에 법정에 섰던 여성들 덕분에 가능한 것임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자신을 법정에 불러 세웠으며 자신의 싸움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임을 확신한다.
“나는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다. 침묵하고 있는 거대한 피해자 무리가 매번 날 일으켜 세웠다. 동시에 그들에 대해 책임감도 느꼈다. 내가 강인하게 버텨야만 2차 가해를 이겨내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걱정도 되었다. 만일 가해자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면, 그 여파는 내 주변의 모든 여자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여자들은 세상이 자신의 말을 믿어줄 리 없음을 직감할 것이다. 정의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이긴다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릴 수 있을까? 내가 거둔 승리를 얼마나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호주에서는 경찰에 신고하는 성폭행 피해 여성의 비율이 세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모든 피해 여성이 진실을 말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380쪽)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
한국의 형사소송법에는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대원칙이 있다. 증거재판주의와 함께 근대 형법의 근간을 이루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은 ‘무고한 사람 한 명이 갇히는 것보다 범죄자 열 명을 풀어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무고한 한 명을 지킬 수 있다면 범죄자 백 명을 놓쳐도 괜찮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벤저민 프랭클린이 여자아이 백 명이 강간당한 사건을 마주했더라면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 인지성이 결여된 무죄 추정의 원칙만을 앞세웠을 때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 수없이 목격해온 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성범죄의 피해자는 대개 상대적 약자다. 애초에 강자가 약자를 ‘타깃팅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가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음을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성폭력 생존자가 가진 가장 큰 증거이자 무기는 무엇일까? 결국 자신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마저 묵살된다면 그곳에 정의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사법 제도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한 여성의 치열한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최지은 작가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호주 사법 시스템의 문제들이 한국과도 지독하게 닮아 있기에”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잘난 몇 명이 떠들어서 나아진 게 아닙니다. 2008년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이 결국 다행히 살아남아서, 입을 다물지 않고 그 고통을 온 국민과 공유해줬기에,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바꿨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피해자조차 사망했다면, 우리는 오늘날도 친고죄가 폐지되지 않은, 성범죄를 그저 수치나 불온으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많이 말하고, 많이 들어야 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팟캐스트 《듣똑라》 ‘2020년 1월 13일’ 편 중에서)
추천사
성폭력 피해 이후 십수 년이 지났지만 브리 리는 폭식, 폭토, 폭음, 자해를 멈추지 못하며 자기혐오에 시달린다. 트라우마는 그의 삶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와 다리를 붙잡아 넘어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훼방을 놓는다.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그런 그가 고통을 딛고 상처에 직면하며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따라간다. 사실, 여성으로서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글을 읽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울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을까. 애써 가둬두었던 기억에 잠식당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브리 리의 말대로, 용기는 두려움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한 사람의 용기는 다른 이들에게 전이되며 세상을 바꾼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그의 용기와 만날 수 있는 것처럼.
- 최지은,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브리 리는 재판연구원으로 법정에서 일하는 동안,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을 끊임없이 목격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스스로 고발했다. 억압 속에서 ‘침묵하는 다수’에 머무르는 것이 결코 안정과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용기는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싸우도록 힘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리하여 피해자들이 말하기 시작할 때, 이들을 둘러싼 억압적 굴레는 도전받을 것이고 끝내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피해자들 곁에서 그들의 진실을 변호하고 연대하며 싸우는 험난한 길을 더 많은 우리가 함께 걸어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조윤희,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전담 변호사
인정사정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용감하고도 강력한 회고록이다. 저자 브리 리는 정의와 인간성, 사법 시스템 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면서도 피해자들을 향한 무한한 지지를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그 스스로가 성폭력 피해자로서 10여 년 전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지인을 법정에 소환해 물러서지 않는 싸움을 벌인다. 이토록 내 안을 파고들어 깊은 곳까지 뒤흔든 책은 없었다.
- 레베카 스타포드, 《Bad Behaviour》의 저자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은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명확하고 정교한 책이다. 저자 브리 리는 섬세한 감각과 명민한 시선을 통해 어릴 적 겪은 성폭력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잔물결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정신을 황폐화시켰는지 돌아본다. 게다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호주 논픽션 분야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의미심장한 책이다.
- 제시카 프리드먼, 《Things That Helped》의 저자
어제저녁 5시부터 읽기 시작해, 지금 막 눈물 속에서 이 책을 마쳤다. 피해자에게 비우호적인 사법 시스템 속에서 편견과 맞서 싸우는 저자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록된 이야기이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두려움에 가득 차 있던 한 젊은 여성이 어느새 놀랄 만큼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여성이 스스로 움직여 마침내 승리하길 바라는 이들에게 매우 유의미한 용기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에게 존경을 보낸다.
- 샬롯 우드, 《The Nature Way of Things》의 저자
한 젊은 여성이 비로소 자신의 무기를 찾아 그것을 사용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저자 스스로 이루어낸 성취가 무엇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 헬렌 가너, 《This House of Grief》의 저자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모가 얼마나 만연한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여성과 성폭력 생존자들을 좌절시켜왔는지 샅샅이 까발리는 중요한 기록이다. 슬프고 마음 아프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더없이 시의적절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줄 책이다.
- 리암 피에퍼, 《The Toymaker》의 저자
저자 소개
저자
브리 리 Bri Lee
작가, 여성운동가.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퀸즐랜드 지방법원에서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재직했다. 법조인이자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데뷔작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으로 2019 호주출판산업상(ABIA)과 2019 빅토리아 프리미어 문학상 등에서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가디언> <바이스> <하퍼스 바자> 등에 칼럼을 기고해왔으며, 다른 저서로는 여성의 코르셋에 관한 성찰을 담은 에세이집 《Beauty》가 있다. 각종 연설, 집필, 방송 활동을 통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확장하고 성범죄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등 다양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bri-lee.com
역자
송예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계간지 《뉴필로소퍼》 번역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등이 있다. 고양이 말리, 니나, 잎새와 살고 있다.